공자(孔子)는 “알아야 면장(免墻)한다.”고 했다. 즉 “알고 임하지 않으면 장차 마주하는 어려움을 면키 어렵다.”는 내용을 아들[鯉]에게 일러 준 말이다. 제자들에게는 ‘지호락(知好樂)’을 강조했다. 즉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뜻이다. 이 표현을 정약용 선생 정신현양 사업에 대입하면, 선생을 바로 알지 않고서는 선생을 좋아하기도 어렵고, 선생의 정신현양사업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된다. ‘정약용 선생 바로알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가치 지향적 삶과 연관되는 ‘숫자6.7’에는 ‘6렴’과 ‘도인7덕목’이 해당된다. ‘6렴’은 중국 고전에서 부구옹(浮丘翁)이 소현령(蕭縣令)에게 가르쳐 준 ‘육자비전(六字?詮)’을 의미하고, ‘도인7덕목’은 여유당(與猶堂) 당호를 지을 때 인용한 내용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다.‘6렴’은 선생과 벗으로 지내던 노론출신의 이재의(李載毅, 1772~1839)가 1814년에 강진초당으로 찾아와 “영암군수로 있는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 목민관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알려줄 글을 하나 써주시오”라는 부탁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가치 지향적 삶에서 ‘숫자5’는 선생의 교육철학이 담긴 내용이다. 여기에는 ‘오교(五敎)’와 ‘오학론(五學論)’, ‘5가지 공부 방법’을 들 수 있다. 첫째, ‘오교’는 삶에서 근본으로 삼아야 할 다섯 가지 가르침으로 “①아버지는 의로워야 한다[父義], ②어머니는 자애로워야 한다[母慈], ③형은 우애로워야 한다[兄友], ④동생은 공손해야 한다[弟恭]. ⑤자식은 효도해야 한다[子孝].”는 내용이다. 선생은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일컫고, 성대로 따르는 것을 도(道)라 일컬으며, 도를 닦는 것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가치 지향적 삶에서 ‘숫자4’는 유배생활과 연관이 있다. 선생의 유배는 세 차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충남 해미현(海美縣) 정배(1790.3.8.~13)로 한림(翰林)선발과 관련하여 노론측의 억지주장에 맞서다 정조의 노여움을 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경북 장기 유배(1801.2.27.~10.20)로 정약종 책롱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 번째는 전남 강진 유배(1801.11.5.~18.9.2)로 황사영백서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중 강진 유배기간과 연관된 ‘사의재(四宜齋)’, ‘4가치기준(四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저술한 책은 500여권이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이러한 저술은 주로 강진의 유배시절에 이루어졌고, 후일에 조선학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해 ‘정다산’이라는 호칭과 함께 ‘다산학’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면서 선생은 “군자는 수기가 반(半), 목민이 반이다.”, “몸을 닦은 뒤에 정제하고 집을 정제한 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천하의 공통이치이니 고을을 다스리려면 먼저 가정을 정제해야 한다.(修身而後齊家 齊家而後治國 天下之通義也 欲治其邑者先齊其家).”는 내용을 『목민심서』에 담았다. 따라서 이번에는 ‘숫자
‘가치(價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옳고[是] 그름[非]의 평가기준이나 신념(信念), 행동을 지배하는 감정체계를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가지는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을 선택한다. 이런 이유에서 가정과 학교, 회사 등에서는 ‘가훈’과 ‘교훈’, ‘사훈’ 등을 제정해서 가치 지향적 삶을 유도해야 하는 데, 가치는 인간의 뇌에서 안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비(是非)의 잣대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정약용 선생은 굴곡진 삶 속에서도 가치 지향적 삶의 표상이었다. 선생은 ‘수기안민(修己安民)’의 철학으로 어려운 입장에 있는 백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가치 지향적 삶은 ‘유시시구(唯是是求)’의 ‘목민정신’과 ‘수기안인(修己安人)’의 ‘목민리더십’으로 귀결된다. ‘유시시구’는 “공정한 마음으로 듣고 보아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오직 옳고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상례사전』 서문에, ‘수기안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자찬묘지명』에 나온다. 그리고 선생의 학문은 효제자(孝弟慈)가 중심인 「오교(五敎)」에 기초하고 있는데, ‘효제자’는 곧 ‘효’로 압축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선생의 가치
인간을 일컬어 ‘욕구(欲求)의 동물’, ‘가치(價値) 지향적 존재’, ‘문화(文化)적 존재’, ‘관계(關係)적 존재’ 등으로 표현한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구(求)하거나 얻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데, 여기에는 가치의 설정과 문화의 영향, 그리고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삶 또한 그런 삶이었다. 선생은 굴곡진 삶 속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오늘날 세계적 인물로 평가받게 된 데에는 가치 지향적 삶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가치’는 일반적으로 ‘물건의 값
선생의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 속에는 선생의 굴곡진 삶과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의 생가와 묘소 등이 있는 ‘남양주유적지’와 다산초당과 사의재(四宜齋) 등이 있는 ‘강진유적지’를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아호는 원래 자신이 짓기도 하지만 남이 지어 부르기도 하고, 본이름 대신에 허물없이 우아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 ‘사의재’ 등에서 보듯이 집에 대하여 붙여진 별칭이다.아호와 당호는 다음과 같은 경우와 연관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남양주가 낳은 세계적 인물이다. 유네스코는 18세기후반 부란(腐爛)에 빠진 조선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선생의 개혁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세계기념인물로 선정(2012년)한바 있다. 선생의 삶은 75년의 생애 중에서 부모슬하 3년을 빼면 72년인데, 18년을 주기로 큰 변화를 겪게 되므로 다음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첫째, ‘수학(修學)’18년이다. 선생은 4세 때 아버지 정재원(丁載遠, 1730~ 1792)에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22세 4월6일, 초시(진사)에 합격할 때까지 18
인간을 일컬어 ‘가치 지향적 존재’, ‘역사적 존재’, ‘사회적 존재’등으로 표현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마치 망망대해와 같아서 각각의 가치기준에 따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정신적 등대 역할을 하는 가치(價値, value)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방향을 선택하는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어떤 부모와 스승에게 배웠느냐,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좌우명(座右銘)과 신조(信條) 등으로 연결된다. 가정의 가훈(家訓)과 학교의 교훈(敎訓)이 중요한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