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두칼럼]정약용 선생의 ‘아호’와 ‘당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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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두칼럼]정약용 선생의 ‘아호’와 ‘당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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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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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두 다산문화교육원 상임이사 전 국방대학교 교수

선생의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 속에는 선생의 굴곡진 삶과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의 생가와 묘소 등이 있는 ‘남양주유적지’와 다산초당과 사의재(四宜齋) 등이 있는 ‘강진유적지’를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아호는 원래 자신이 짓기도 하지만 남이 지어 부르기도 하고, 본이름 대신에 허물없이 우아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 ‘사의재’ 등에서 보듯이 집에 대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아호와 당호는 다음과 같은 경우와 연관된다. 첫째, 생활과 인연이 있는 장소를 연관지어 호로 삼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열수(洌水)’, ‘열상노인(洌上老人)', ‘열초(洌樵)’, ‘열수산인(洌水山人)’, ‘열로(洌老)’, ‘열수옹(洌水翁), ‘초계(樵溪)’, ‘철마산인(鐵馬山人)’, ‘철마산초(鐵馬山樵)’, ‘철마초부(鐵馬樵夫)’, ‘다산(茶山)’ 등이 해당된다. 둘째, 이루고자 하는 뜻을 담아 호로 삼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여유병옹(與猶病翁),’, 여유당거사(與猶堂居士), ‘사의재’ 등이 해당된다. 셋째, 처하게 된 환경이나 여건을 담은 경우인데, 이 경우는 ‘삼미(三眉)’, ‘다산’, ‘여유당’, ‘태수(苔叟)’ ‘자하도인(紫霞道人)’ ‘문암일인(門巖逸人)’ 등이 해당된다. 넷째,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것을 호로 삼는 경우로, ‘죽란산인(竹欄散人)’, ‘탁옹(籜翁)’, ‘죽옹(竹翁)’, ‘균옹(筠翁)’, ‘탁피족인(籜皮族人)’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호(號) 중에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아호는 ‘다산’이다. 그리고 다산은 전남 강진의 만덕산 자락에 있는 차(茶)나무가 많이 나는 뒷동산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또한 이곳에는 선생이 유배오기 전부터 ‘다산초당’이라는 정자(亭子)가 있었다. 즉 선생이 ‘사의재(1801~)’→‘보은산방(1805~)’→‘이학래 집(1806~)’ 등을 거쳐 1808년 3월부터 1818년 9월까지 다산초당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전부터 교유(交遊)하던 혜장(惠藏)과 주민들이 ‘다산초당에서 글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뜻에서 ‘다산선생’이라 불렀고, 훗날 조선학을 연구한 학자들도 다산에서의 업적을 기려 ‘정다산(丁茶山)’으로 호칭하면서 대표 아호가 된 것이다. 그러니 문화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생이 남긴 저작(著作)에는 ‘다산’을 아호로 남긴 기록은 없다. 특히 선생의 직계 4대후손인 정규영(1872~1927)이 1922년에 지은 연보를 『사암연보』라고 명명한 점, 그리고 선생이 회갑 때(1822) 지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도 ‘사암’을 아호로 밝히고 있다. “이 무덤은 열수 정약용의 묘이다. 본 이름은 약용이고 자(字)는 미용(美庸), 또는 용보(頌甫)라고도 했으며, 호는 ‘사암’이고 당호는 ‘여유당’이다.”라는 내용에서 보듯이 ‘사암’이 아호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선생의 작품들, 예컨대 강진 유배지에서 쓴 ‘상례사전’/‘악서고존’/‘목민심서’/‘흠흠신서’ 등에는 ‘열수(洌水)’로, ‘심경밀험’/‘매조도’/‘유배지에서 쓴 편지’ 등에는 ‘열수옹이 다산 동암(東菴)에서 쓰다’로, 해배 후 마재에서 쓴 ‘아언각비’/‘이담속찬’ 등에는 ‘철마산초’로 기록했는데, 여기에 쓴 ‘열수’, ‘철마산초’, ‘다산’ 등은 『자찬묘지명』에서도 그렇듯이 아호가 아니라 고향을 사랑해서 관향(貫鄕)처럼 쓴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당시에는 본인이 쓴 작품에 본인의 아호를 기록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다면 선생의 아호와 당호를 바르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교육에 의한 길 말고는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다.

지금 정약용 선생의 정신을 현양하는 문화 사업이 유적지를 관리 운영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강진은 1957년도부터 복원사업을 했고, 남양주는 28년 뒤인 1985년도에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호에 대한 논란이 자연스럽게 일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요, 문화는 천년대계(千年大計)다.”, “문화는 교육에 의해 진화한다.”,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라는 등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약용 선생의 아호는 ‘다산’이다. ‘사암’이다.”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어떻게 교육함으로써 선생을 이해하고 선생의 정신을 문화로 진흥할 것인가?”에 관심을 모아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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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일 2019-09-12 21:54:50
좋은 의견과 글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천재이자 대실학자이신 다산 선생님은 '사암'이라는 호를 좋아하셨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정조임금님과 다산의 만남이 더 되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에 '~~~했더라면'은 없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욕심이 납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황순일 2019-09-12 21:54:23
좋은 의견과 글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천재이자 대실학자이신 다산 선생님은 '사암'이라는 호를 좋아하셨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정조임금님과 다산의 만남이 더 되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에 '~~~했더라면'은 없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욕심이 납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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